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발도 피욜 (문단 편집) === [[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|국가대표]] 경력 === 1974년 감독이었던 [[오마르 시보리]]에 의해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써드 골키퍼의 지위로 그 해 [[1974 FIFA 월드컵 서독|1974년 서독 월드컵]] 스쿼드에 포함되었다. 아르헨티나는 2차 조별리그에서 강력한 네덜란드를 맞아 0-4로 대패를 당했고 피욜은 [[마리오 켐페스]]와 함께 이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.[* 켐페스는 후반전에 출전하긴 했다.] 4년 뒤인 1978년 자국에서 열린 [[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|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]]에서 피욜은 이제 넘버원 골키퍼가 되어있었다. 젼년도인 1977년 아르헨티나 올해의 축구선수로 선정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던건 덤. [[다니엘 파사레야]]와 [[마리오 켐페스]], 그리고 피욜 등의 맹활약으로 아르헨티나는 1차 조별리그에서 2위로 2차 조별리그로 진출했고, [[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|폴란드]]를 꺾고, [[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|브라질]]과는 비긴 후 [[페루 축구 국가대표팀|페루]]를 6:0으로 격파하여, 결승전에 진출했고 결승전에서도 [[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|네덜란드]]를 3-1로 꺾으며 첫 월드컵 우승에 성공했고, 피욜은 이 대회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되었다. [[1982 FIFA 월드컵 스페인|1982년 스페인 월드컵]]에도 참가했으나 [[포클랜드 전쟁|경기 외적 요인]] 등 아르헨티나는 전체적으로 슬럼프에 빠진 팀이었고 결국 2차 조별리그에서 악명 높은 [[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|이탈리아]], [[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|브라질]]에게 동네북 역할만 했다.[* 이 조별리그는 사상 최악의 죽음의 조로 꼽힌다. 대회 우승팀인 이탈리아, [[지쿠]] - [[소크라치스]] - [[호베르투 팔캉]] - [[토니뉴 세레주]]를 필두로 역대 최고의 팀으로 평가받던 브라질, 그리고 사실 아르헨티나도 지난 대회 우승 전력들이 그대로 보존된 것에 초신성 [[디에고 마라도나]]까지 합류한 팀이었다.] 이후 [[네리 품피도]]에게 주전자리를 내주어 [[1986 FIFA 월드컵 멕시코|1986년 멕시코 월드컵]]에는 참가하지 못했고 우승을 TV로 지켜봐야만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